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제국 황실 복원론 (문단 편집) === [[이해원(1919)|이해원]] 옹립 사건 === 2006년 9월 29일에 일부 [[대한제국]]의 황실 후손들이 모여 만든 대한제국 황족회라는 단체에서 [[십자가]]가 새겨진 의자를 빌려와 대한제국 황실 복원을 선언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425169|뉴스기사]] 당시 [[반기독교|안티 기독교]] 성향 네티즌들은 기독교계에서 [[내란]]죄가 성립될 수 있는 사고를 쳤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사실 이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선교청은 이강무가 독자적으로 세운 종교 교단이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기성 기독교 종파와는 전혀 다른 비주류 종파다. 선교청은 동양에 새로운 [[교황청]]인 선교청을 세우자는 종교 운동인데, 당연히 [[천주교]]는 물론, [[정교회]]나 [[개신교]]와도 결이 다르다.[* 천주교와 정교회에게 이들은 각각 [[교황]]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와 동급의 자리를 참칭하는 이들이고 개신교는 아예 이런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애초에 조선 왕실 및 대한제국 황실의 공식 종교는 [[유교]] [[성리학]]이었고 [[조선의 천주교 박해|기독교는 오히려 조선 말기 서학 시절부터 조선 왕실에게 박해받았다.]] 고종 대에 이르러서야 조선 왕실이 외세에 의존하면서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기대려고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로 개종하지는 않았다. 일제강점기때는 종파 단위로 폐합과 분할이 일상화될 정도로 특히 심한 핍박과 박해에 시달렸는데 당시 이왕가 사람들은 그런 악독한 일본 뒤에 숨어서 자기 배나 불렸으니 여론이 좋을 리가 없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승만]], [[김구]], [[김규식]], [[안창호]], [[함석헌]] 같은 기독교 신자인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공화파였던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는 전반적으로 황실 복원 운동을 싫어할지언정 동조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기독교 세력 역시 공화국 위주로 생각한다. 이런 역사로 인해 선교청은 기성 기독교 종파를 벽돌교회라고 부정하면서 과격한 세계시민주의를 주창하는데, 교리가 심하게 다른데다가 종교를 통해서 조선 황실을 복원하려는 의도가 다분해서 기성 기독교 종파들은 선교청을 이단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이해원 옹립 사건으로 자신들이 욕을 먹자 선교청에게 더욱 악감정을 가졌다고도 한다. 특히 선교청이 개신교의 용어, 전례 방식을 많이 빌려가서 엉뚱하게 개신교가 가장 욕을 많이 먹었기에 다른 기성 종파보다 더욱 적대적이다. 비록 일부 황실 후손들이 천주교에 귀의하면서 기독교인들이 모두 황실복원론에 회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황실복원론에 호의적인 기독교인들도 대부분 선교청에게는 매우 적대적이다.[* 특히 이해원 옹주가 찍은 사진에서 나온 의자가 개신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종류라서 오해를 더욱 가중시켰다.] 이들은 [[힐튼 호텔]]에서 대관식을 갖고, 이해원을 황위에 옹립하였다. 이유인 즉슨 [[영친왕]]의 아들 이구가 2005년 일본에서 의문사로 타계한 이후 그 혈통이 끊어졌기에, 의친왕의 차녀인 이해원을 추대한 것. 이 대관식에서 황족회는 [[총리]] 대신으로 [[선교청대학교]](당시 성민대학교) 총장 이강무([[효령대군]] 후손), [[비서실장]]에 이성주([[남연군]] 후손)를 추대했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아무런 인정도, 지원도 받지 못하고 끝난 '''그야말로 [[흑역사]]이다.''' 정부의 반응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내란죄]]로도 규정하지 않은 [[먹금|무시 그 자체]]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헛짓거리였다. 정부가 이미 있는 상태에서 헌법에 반하는 이 일을 인정한다는 건 모순으로, 전주이씨대동종약원만이 아니라 황실과 관련된 다른 민간 단체들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단체의 일원 중 일부는 이원이 이구의 양자가 된 것은 현행법으로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의친왕의 자녀들 중 최연장자인 이해원이 이구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원래 조선에서는 왕족의 일부 계보가 끊기면 아들이 많은 왕족의 아들 중 하나를 대가 끊어진 왕족의 사후 양자로 삼는 형태로 계보를 이어가게 했다. [[남연군]]이 [[사도세자]]의 서자 [[은신군]]의 양자가 된 것도 이런 예 중 하나.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사후 [[입양]]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해원은 여성이기에 [[유교]]를 중시한 조선의 문화를 생각해봤을 때 정통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에서 유일하게 여왕을 옹립한 신라조차 '남성 계승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고, 현대 유럽의 왕실을 봐도 여성 군주는 의외로 많지 않다.]. 또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황실수장 역시 이원이다. 그리고 총리대신에 추대된 이강무의 경우 자신이 세운 선교청대학교가 2010~11년에 2년 연속으로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되는 등 온갖 비리 혐의가 드러나, 결국 학교는 폐교되고 자신은 2013년 1월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에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071872|불구속 기소]]되어 "대학 하나도 제대로 운영 못하는 인물이 무슨 한국 황실 총리대신인가"하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단체에서 여황제로 옹립된 이해원은 이후 2020년 2월에 자택 인근의 노인요양병원에서 사망하였고, 후계자가 따로 추대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아무런 영향도 없이 끝나버린 해프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